Friday, February 10, 2017

8년 전 이맘때

2017.02.10. Friday

1. 코가 페북메시지로 '라라 혹은 나나거리는 Kpop 모아놓은 유투브 동영상'-_-을 보내주었는데 어린 애들이(진짜 예전엔 몰랐는데 내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아이돌 애들이 진짜 어려보이네@_@!) 열심히 춤추는 모습을 보니깐, 예전에 나도 공연하고 했던 거 생각이 났다. 지메일에 유고걸 연습하던 동영상 있었지 싶어서 찾아서 보다가 그때쯤 하버드 어드미션 이메일 받고 정기랑 지챗으로 얘기했던 기록도 남아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. 몇시간동안 한 채팅이라 그런지 읽는데도 오래 걸렸네 ;; 그런데 그래도 다시 읽어보니깐 무려 8년 전 이맘때, 어드미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던 것이 다시 선명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. 다른 친구들은 인터뷰 제의나 합격소식들이 계속 날라오는데 나만 별 소식이 없어서 두려웠던, 이러다가 나는 올리젝 받는 거 아닌가?... 그 당시 석사 실험실에서 타대 출신 여자 애들이 나를 무진장 괴롭혀서 꼭 탈출해야겠다하고 결심을 했었는데, 그 소원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건 아닌가? 하루하루, 아니 매초마다 불안해 했던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, 그 뒤로 하버드 잘 입학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도, 그때의 그 긴장감이 마치 데자부처럼 피어올라 지금 내 가슴을 저리게 만들고 있다...

아침에 기숙사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하버드에서 어드미션이 와 있어서 울먹거리면서 정기랑 가족들, 그리고 주변의 친하고 고맙던 사람들에게 알렸던 그날 아침. 이제 드디어 안심할 수 있구나 싶었지만, 초천재들만 모여들 것 같았던 하버드에서 내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고 곧 뒤따라왔던 걱정 ㅋㅋ 근데 그 뒤에예정되어 있었던 존홉킨스 인터뷰는 결국 왜 안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.. 어쨋튼, 그때 어드미션 소식에만도 엄청 감사하고 기뻐했었는데,  그뒤로 좋은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어 무사히 잘 졸업하고 무려 하버드 교수인 박사 지도교수님이 시작하신 스타트업에 창립 멤버로도 조인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었지...  진짜 생각해보면 나는 감사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. 그리고 행운이 계속 나를 도와 이렇게 잘 된만큼 나 자신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.

안 그래도 요새 가끔씩 회사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기도 하고 걱정도 되기도 하고, 나는 거의 맨날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데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 억울한 생각도 들고, 저 사람들은 여기 가족이 있어서 일찍 가도 되지만 나는 가족도 없고 해서 늦게 남아 있는걸 나중에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, 사실 나름 crossfit도 포기하고 일하는 건데,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은 다 떠나서 외롭기도 한데... 이런저런 잡생각도 많이 들고 작년 가을처럼 또 번아웃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던 차라 8년 전 그때의 다짐을 다시 떠오르게 된 게 다행이기도 하다. 사실 10년 전의 나에게, 지금의 나의 상황을 옵션으로 주면, 그걸 실제로 이루기 위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? 대학교 1학년 1학기때 학점도 잘 안나오고 인생에 재미가 없어 방황했던 그 내가,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하버드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도 따고,  하버드 교수가 세운 멋진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잖아.


2. 저번에 일기에 썼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, 종섭이가 보스턴 비지팅해서 애들이랑 카유가에서 보았을때, 뜬금없이 나보고 정기랑 연락하냐고 물었었다. 그래서 왜 묻는지 좀 짐작은 되면서도, 아니 개인적으로 연락 안한다고 했더니, 그뒤로 말을 안 잇길래, '왜 너는 정기 종종 만나?' 이랬더니 '나 말 안할래'...이런 대답이;;;; 솔직히 멍미...? 싶고 당황스러웠지만 혹시 정기 결혼한 걸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저러나 보다...싶어서 나중에 헤어지기 전에, '나 정기 결혼 한 거 알아, 그거 때문에 그러는거야?' 했더니 이해 한다는 표정으로, 나를 위로하는 듯이, ' 모 과거 일은 과거 일이니깐' 하면서, 자기도 자기 예전 여자친구가 결혼한다고 하면 좀 그렇겠지...이렇게 얘기하더라...  난 괜찮다고 하는데 그렇게 계속 얘기를 하니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, 음..내가 여기서 정말 슬퍼해야 하는 상황인건가?...싶기도 하고. 물론 우연히 정기 결혼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한 일주일간은 약간 멘붕 상태였지만 (근데 이건 정기가 그냥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한 거였으면 모르겠는데 화연이랑 결혼해서 좀 그랬던 것이었다는-_-;;;) 그 뒤로는 또 덤덤해져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얘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깐 마음이 또 착잡해졌었다...  하지만 정기랑 사귄걸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는다. 예전에 채팅했던 걸 잠깐 읽어봐도, 서로서로 정말 위하는게 느껴졌고, 그때의 마음은 진심이었으니. 대학교 1학년 1학기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래저래 방황하다가, 2학기 어느 때부터인가 마음을 굳게 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도 꽤 올릴 수 있었지만, 그 뒤로 2학년때부터 졸업할때까지 도서관 죽순이가 되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정기의 존재가 큰 몫을 한 듯하다. 몇년간 같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시너지 효과도 나고, 외롭지도 않았으니. (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시기에도 ) 그러고 보면 단 한사람이라도, 나를 아끼고, 내가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.

정기랑 나랑 결국에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는 그의 모친 및 누나들의 작용도 큰듯하다. 사실 가족들이 계속 반대하고 싫어하면 마음이 흔들리기 쉽겠지. 심지어 그 모친은 정기가 내가 하버드에 합격했다는 좋은 소식을 이메일로 보냈을때도 축하한다는 말은 한마디 없고 다른 소리나 해대고 조심하라는 얘기만 해대는 사람이었으니 -_- ... 물론 그당시 남좌민 교수님 말대로 '정치를 못'했던 어린 내가 그 사람들에게 애교를 떨고 하지 못했던 잘못도 있다. 쩝.. 그 때는 교수님이 나보고 '정치를 못한다'고 해서 참 어이가 없고 무슨 상관이야...싶었는데.  지금은 '인간 관계'나 '사회 생활'에 대해 좀 더 알것 같긴 하다... 물론 아직도 '정치'는 잘 못하지만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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